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2019. 7. 26. 22:36Book

이 책의 저자를 아는 순간, 책을 읽으면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로 매주 토요일 밤 우리를 만나는 유상호 교수가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스스로 수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나는 응당 법의학자의 범죄 관련 칼럼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그가 서울대에서 '죽음'을 주제로 교양 강의를 했던 걸 바탕으로 쓴 책이다. 책의 1부 제목처럼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가 가장 가까이서 본 인간의 마지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담담하게 적었다.

1부는 그가 부검했던 사례를 중심으로 죽음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고, 또 가장 많은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2부는 죽음과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나 존엄사 등 유상호 교수가 의사로서 생각하는 바를 들려준다. 3부는 죽음을 과연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논하고 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 챕터에서는 인간 유상호로서의 의견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였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 앉아 있었다. 일주일 전에 얼굴을 뵙고 왔었는데, 막상 장례식장에 향하자 어쩐지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보다는 삶에 고민이 많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근본적인 문제지만 가장 어려운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삶에 정답은 없다는데,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좋은 걸까 한참을 생각했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읽었을 때쯤에는 퇴근하는 버스 안이었는데, 그때서야 내가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한참 우울 증세가 심했을 때는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죽음을 향해가는 동안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궁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유상호 교수는 죽음을 꼭 두려운 존재로만 보고 있지 않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세상에 남은 사람에게 피해가 없도록 빚을 남기지 말고, 나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마지막을 축하해주는 것. 나 역시 이 책에 나온 것처럼 끝 맛이 깔끔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삶은 힘들었을지 몰라도 죽음은 행복하게 맞이한다면 그거야말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한편, 유 교수는 죽음뿐만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2045년이 되면 죽지 않는 시대가 온다는데, 실제로 미국의 어느 부호는 수천만 원을 들여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만약 나는 죽음과 영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영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 부분도 많은 생각을 들게 해줬다. 마지막으로 죽음은 멀리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삶의 완료에 대해서 한 번쯤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줘서 이 책에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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