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2020. 2. 14. 01:11Movie

 

때아닌 코로나19 때문에 오늘 아침에 출국했어야 할 타이베이 여행마저 취소됐다. 덕분에 운동 외에 외출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슬슬 신규 감염자도 소강상태인 것 같아 눈치보며 영화관으로 갔다. 가끔씩 영화관에서 하루종일 영화를 보는 게 내 스트레스 해소법의 일종이었는데, 오늘은 큰 맘 먹었다. 그 중 첫 타자 조조영화로 고른 건 정직한 후보. 올해부터는 남 눈치 안 보고 영화만이라도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로 했는데, 내가 살면서 부득히 후회를 한 이유는 라미란의 전작 <걸캅스> 때문이었다. 아마 그 때부터 여성이 원탑 주연이나 콤비물로 나오기 시작했을 즈음이었고, 여성영화는 실패하기 쉽다는 색안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때 <걸캅스>를 극장에서 보는 걸 주저하다가 결국은 보지 못했다. 동생이 그런 나를 보고 여성영화를 여성이 봐줘야 앞으로 여성영화가 더 많아지지 않겠냐는 한마디를 듣고 나서 꽤 후회 했었다. 그래서 보았다, <정직한 후보>!

<정직한 후보>는 라미란이 상숙으로 분해서 원톱으로 스토리를 다음과 같이 이끌고 나간다. 상숙은 할머니의 보험문제로 1인 시위를 하고나서 국회의원 3선을 한 여성정치인이다. 이제 4선에 도전할 차례, 하지만 상숙의 할머니는 상숙이 국회의원이 된 후 거짓말만 느는 상숙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아프다는 핑계로 상숙을 불러낸 비오는 밤,  상숙의 할머니는 상숙이 제발 거짓말 안하고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상숙은 거짓말 같이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 그렇게 입 바른 말밖에 할 수 없게된 상숙이 4선 의원에 도전하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재미있게 그려낸 영화다.

사실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본 예고편 외에 아무런 지식도 없었는데, 오프닝 크레딧에 굉장히 낯익은 이름, 정유정이 감독으로 올라와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방구석 1열>에서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알게 된 회차에 나왔던 감독이었다. 남성 감독이 만들었을 거라 생각해서 기대반 걱정반이었던 내 근심을 단 한번에 날려줘서 자세를 좀 편하게 하고 관람을 시작했다. 근데 진짜 불편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여성들이 선역으로만 비춰지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좋았는데, 특히 상숙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중에 정말 올바른 정치인이 됐을 무렵에 티비 화면으로 나오는 상숙의 또 다른 라이벌 여성후보가 젊고 정의로운 속성에서 훗날 정치판에 찌들고 능구렁이가 되버린 모습은 (비록 작은 부분이었으나)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라미란의 코믹연기도 이 영화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거짓말을 못하게 되고나서 상숙이 남편에게 속내를 들어내는 장면은 순간 극장이라는 장소개념도 잊을 만큼 큰 소리로 웃게 되었다. 만약 개그우먼 박나래나 평소 라미란의 개그코드, 화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정직한 후보>는 완벽한 킬링타임 무비로 알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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