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2019. 11. 1. 16:05Movie

 

어떤 연대든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겠지만, 특히 소수자나 약자들은 네트워킹은 물론 정서적인 동감이 아주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관심이 필요한 토픽에 대해서 문화작품이 나오면, 나는 늘 소비하는 방식으로 그들과 함께함을 나타냈었다. 영화 <택시운전사>나 <눈길>이 그랬고, 소설 <82년생 김지영>도, 영화 <82년생 김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원작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읽어서,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원작의 그 울화통 터지는 답답함이 생각났다. 그래서 영화를 볼까말까 고민을 했었던 거고.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사이다'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 심리적인 상태가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위의 영화를 한 번 이상은 못 보는 편이다. 나 즐겁자고 보는 영화에 그런 괴로움을 받아가면서 봐야하는 자조가 들었었지만, 보고나니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여성의 삶에 공감을 했을 뿐만 아니라 기혼여성에게도 미혼 또는 비혼여성과 같은 수준으로서의 존중을 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결혼이라는 굴레와 제도적인 고리타분함에 스스로 발을 멘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욕망을 실현시킨 것 뿐인데 말이다.

이 영화는 덤덤한 시선 속에 진행되지만, 장면장면마다 연출되는 '여자이기 때문에' 부딪히는 현실적인 장벽에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특정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지영의 학창시절 회상 속에서 지영의 아버지가 학생인 지영에게 "아무렇게나 웃지 말아라, 치마는 그렇게 짧게 입지 말아라" 잔소리(라고 쓰고 개소리라고 읽는)하는 장면은 나도 어렸을 적에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너무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영의 엄마가 지영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온 시퀀스 전체는 거기서 눈물을 안 흘릴 수 있는 여자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내 양심을 콕콕 찔렀던 장면이 있었는데, 영화 후반부 쯤에 지영이 딸 아영이와 함께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다가 뒤에서 '맘충'이라고 욕하던 사람들을 보며 한마디 한 장면이었다. 지영의 대사를 들으며 어리석었던 나의 잘못된 관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 돌보는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어야 했는데, 지난 날의 나를 돌아보면서 그런 점이 부족했던 것 같아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이 영화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많은 여성들이 지영처럼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나 역시 지영처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영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 역할 중에서 그 어떤 역할도 지금의 여성을 대변하지 않는 캐릭터는 전혀 없다. 여성들은 이 <82년생 김지영>의 모든 역할을 보면서 안 떠오르는 주변의 여성지인이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 세대를 아우르며 느낄 수 있는 그런 부조리함을 애써 부정하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결코 덮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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