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2021. 7. 9. 20:51Book

마법 소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가? 나는 대형 프랜차이즈의 히어로물은 싫어하면서도 세일러문의 영향일까 이런 마법 물은 좋아한다. 특히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세상을 위해 싸우는 고독하고 독특한 일상 마법 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작년 이맘쯤 나왔던 <보건교사 안은영>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땐 활자와 사이가 좋지 않아 원작을 읽지 않았지만, 올해는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면서 정세랑 작가의 원작도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의 주인공 '은영'은 한 사립학교의 보건 교사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젤리처럼 생겨선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해서 은영의 힘으로 감싼 장난감 총과 깔때기 검으로 없애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은영의 전투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경쾌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면서도 있을 법한 소재라 오히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고, 모든 에피소드가 해피엔딩이라 책을 덮고 나서 나마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파트는 '온건 교사 박대홍'. 이 파트는 넷플릭스 시리즈에 실리지 않은 대목인데,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인물 대홍과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에 영화처럼 인물을 상상하며 읽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라, 문학보다 비문학을 선호한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드라마 속 장면보다 오히려 오리지널 이미지가 떠올랐다. 장면 묘사도 술술 읽히고, 문체도 말랑말랑하고, 무엇보다 은영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맘에 들었다. 누구보다 인간다우면서 누구보다 용사다운 귀여운 보건 교사. 마치 '이런 일이 생기는 건 내가 다 귀엽기 때문이야'라는 문장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인물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을 좀 더 판타지처럼 생각하고 일상을 비일상처럼 느낄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