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

2021. 8. 11. 01:44Movie

모처럼이라 왓챠 '보고싶어요' 탭에 있는 영화를 하나 둘 정복하기로 했다. 오늘은 실존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기로 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이다. 필리핀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독재 정치의 어둠이 드리웠던 나라 중 하나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라고, 반일 투사 이미지를 강조하며 등장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도 다를 바 없었다. 그와 그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무려 20년 간을 대통령 자리를 놓지 못하고 힘을 휘두르고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 결국 마르코스 부부는 '피플 파워'라고 불리는 민중에 의해 마닐라에서 쫓겨났다. 페르난데스 마르코스는 오랜 지병으로 죽고 없어졌지만, 여전히 이멜다 마르코스는 옛 영광을 무기로 독재의 역사를 잇고 있다. <이멜다 마르코스: 사랑의 영부인>은 현재까지도 부패한 필리핀 정치세력을 조명하며, 부정의 역사를 잊어버린 나라에 어떤 일이 생기는 지를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장면은 가장 첫 장면이었는데, 빨간불에 멈춰선 이멜다의 차량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들에게 현금 다발을 나눠주는 모습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이 다큐멘터리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마치 그 중세시대 왕처럼 명품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간식이라도 사드세요'라고 말하는 이멜다를 볼 때마다 불쾌한 기분과 민중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취급에 화가 났다. 또한 우리나라 케이블 방송에서도 해외의 엽기 정치로 소재에 오르는 이멜다의 수많은 명품 구두도 그녀에게는 수치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농담의 소재다. 마치 옷을 사듯 뉴욕의 건물을 사고,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사서 사람이 사는 섬에 풀어놓는 행위마저도 역겹다. 이 다큐멘터리를 그런 과거를 사랑스럽게 말하는 이멜다를 담지만 역설적으로 이멜다를 한심한 사람으로 비추게 만든다. 또한 마르코스 정권 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증언도 함께 보여줌으로써 사랑과 낙원을 외치는 이멜다가 얼마나 부패했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주장하는지도 보여준다.

하지만 제일 괴로운 것은 이것들이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원히 추방될 것 같았던 마르코스 일가는 페르디난드의 죽음 이후 필리핀으로 돌아왔고, 이멜다는 각종 소송에 휘말렸지만 하원의원직을 수행했으며 그들의 자녀들 역시 주지사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외동아들 봉봉 마르코스는 2016년 필리핀 부통령 선거에 나가면서 TV 토론에서 아버지의 만행을 부정하는 일까지 저지른다. 비록 봉봉 마르코스는 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지만, 여전히 현 정권인 두테르테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다. 마치 우리의 박정희, 박근혜가 떠오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결국 촛불혁명으로 무너졌듯이, 이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마르코스 일가가 언젠가 무너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라는 정의의 가치가 아직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필리핀에도 진정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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