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내일이 올거야

2021. 10. 26. 20:51Book

내가 책에 가장 열중해있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중학생 때였던 거 같다. 중학교 3학년, 도서부는 아니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도서부 담당인 데다 도서부인 친구도 있어서 한참을 학교 도서실을 점심시간마다 들락날락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세운 목표가 하나 있었다. '일본 소설 코너에 있는 책 다 읽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목표를 세운 까닭은 하나다. 일본 소설 소장 권수가 가장 적어서. 책장 여러 개를 차지하던 한국소설이나 기타 영미소설에 비하면 일본 소설은 책장 1개도 다 못 채울 정도로 적었다. 덕분에 졸업할 때까지 대부분의 일본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 독서 지구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에 한 권을 읽을까 말까로 쇠퇴해 있다.

아니 근데 내가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라는 책을 읽게 된 계기에 중학생 때 이야기는 왜 필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최근 독서의 절실함을 느끼면서 전자도서관을 둘러보다 문득 중학생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금 내 처지를 잠시 잊을 수도 있었고, 어떤 순수한 목표의식을 불태울 수 있었던 그 시기. 그 느낌을 살리면서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를 빌리게 됐다. 사실 주제도 끌리긴 했다. 비정규직이었던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라는 책 소개에 나의 지금을 떠올렸고, 어쩌면 이 책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4인방, 요스케·신야·호센·슈고가 파견사원에서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되면서 시작한다. 7월 말,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폭염의 츠루오카에서 도쿄로 다시 상경해야하는 네 사람은 '시간도 남았고, 가봤자 할 일이 없어서' 도쿄까지 걸어서 가기로 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오타쿠' 신야는 자신들의 여행을 '내일의 행진'이라고 이름을 붙여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한다. 원래도 파워 블로거였던 신야는 자신의 주특기인 PR을 이용해 내일의 행진 블로그까지 대박을 터뜨리고, 주간지 취재를 받기도 한다. 주간지 취재는 심심해서 벌이는 도보여행이 아닌 '비정규직과 공평하지 않은 사회를 향한 울분'이라는 주제로 이들을 주목시킨다. 이들의 사회적인 명분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며 결국엔 400명이 모이는 큰 이벤트로 바뀌고, 어느새 후생노동성까지 주목하게 된다.

주인공 네 사람은 사회의 테두리에 벗어나 있는 인물이다. 요스케는 신졸채용*에 떨어져 결국 파견사원으로 밀려난 인물이고, 신야는 넷우익, 호센은 중국 잔류 고아** 3세, 슈고는 전과자다. 하지만 현실의 낙오자 같던 그들은 어쩌다 시작한 이 도보여행을 통해 생각을 깨우치는 인물로 성장한다. 특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중심이었던 슈고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나머지 세 사람 역시 슈고를 관용으로 감싸주는 모습이 참 감동스러웠다. 저 중에서 가장 남에게 차가울 것 같았던 신야마저 슈고에게 용기를 내라는 말을 전하는데, 걷기 자체가 사람을 저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건지 놀라기도 했다.

나도 걷기를 참 좋아하는데, 올해 5월에 제주도에서 이틀동안 50킬로를 걸으면서 들었던 '긍정적인 생각'이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실은 이사다, 취준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게을리하고 독서를 소홀히 한 탓에 다시 살짝 약해진 멘탈이지만, 다시 내 포텐을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읽고 열심히 걷고 열심히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일본 채용시장은 보통 신입사원으로 대학 4학년 졸업예정자를 선호한다.
**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중국에 있다 미저 귀국하지 못하고 고아로 자란 일본인. 그들은 대개 1980년대 이후 일본에 귀국하였으나, 일본어가 서툴고 경제적 기반이 없어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