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9. 15:33Serials

오래된 오타쿠들은 유동식같은 옛날 콘텐츠로 연명한다더니, 요즘 내가 그렇다. 새 콘텐츠는 보기 전까지 저울이 많아졌다. 재밌을까, 중간에 기분 나빠지진 않을까, 내 멘탈을 흔드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결국 '예전에 이거 재밌었지' 하고 금세 그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궁>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재밌다라는 감각에서 벗어나 따라하고 싶다,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준, 오타쿠의 필수 감정 '과몰입'이라는 요소를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첫방송을 기다렸던 순간을 기억하고, 채경이처럼 팔토시에 옆으로 머리를 묶고 다녔던 걸 (흑역사지만) 기억한다.

그런 작품을 다시보게 된 계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OST. 크로스오버 밴드인 두번째달이 음악감독으로 나선 <궁>은 미술만큼이나 음악도 유명하다. 요즘 블로그를 쓰면서 가사 있는 곡은 집중이 안되서, 두번째 달의 곡을 듣다보니 문득 <궁>이 보고 싶어졌다. 다행히 왓챠에 있었다.

드라마의 배경은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2006년의 대한민국. 입헌군주제인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약간 웃기지만, 넘어가자. 예고 디자인과에 다니는 채경은 평범한 열아홉의 고등학생이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날아든 통보, '황태자와의 결혼'. 선대 황제와 친우였다는 할아버지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고, 채경은 이 결혼을 결사 반대했지만 집에 붙어진 빨간 딱지와 몰려든 사채업자를 보고 불끈 결심했다. 우리집을 살리기 위해선 이 결혼 해야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구중궁궐로 대략난감하게 들어간 채경의 좌충우돌 황태자비 성장 스토리다.

그때는 말괄량이 좌충우돌 채경이 캐릭터와 황태자와의 러브스토리에 끌려서 봤지만, 지금 다시 보니 모든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설정 자체가 매력적이다. 특히 악역이라고 생각했던 '효린'이를 다시 보게 됐다. 자신의 꿈이 먼저라 황태자의 청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걷어찼지만, 채경이를 보고 신이를 다시 되찾고 싶어하는 설정부터가 맘에 든다. 사실 누구라도 열아홉에 청혼을 받으면 차기 마련이지만, 황태자와의 결혼이라면 욕심나지 않는가. 중간에 최종악역 중 하나인 화영에게 이용을 당하지만, 깔끔하게 본인의 패배를 인정하고 진정한 꿈을 찾으러 떠나는 엔딩이 좋았다. 공항에서 친구들에게 신이 대신 꿈을 손에 넣으려고 노력하겠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게다가 원래는 부잣집 외동딸이 아니라 부잣집 거주 도우미의 딸이라는 설정도 전형적인 스토리를 비튼 설정이라 좋았다.

누가 이 작품을 두고 미성숙하기에 성숙하고,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한게 있었는데, 다 본 지금 그 평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나이가 열아홉인 것도 맘에 든다. 그 설정 덕분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었고, 점점 성장하는 주인공을 응원할 수 있었다! 내년 안으로 리메이크작을 제작한다는 데, 리메이크작도 기대하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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