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2019. 6. 7. 22:10Movie

내가 중국어를 배우게 된 데는 홍콩 영화의 지분이 가장 컸다. 물론 나중에서야 보통화와 광둥어가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지만, 홍콩 영화 덕분에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게 됐다. 그 어느 나라도 흉내내지 못할 향수와 감성은 예전 홍콩 영화까지 찾아보게 되는 매력이 되고 또 다른 재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그 중 홍콩 영화에서는 보석같은 배우들도 빠질 수 없다. 먼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국영부터 의리의 따거(大哥) 주윤발, 곽부성, 장학우, 임청하 등등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도 힘든 쟁쟁한 배우들 중 유독 빛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양조위와 유덕화. 이 멋진 배우가 무려 세트메뉴처럼 영화 내내 나오는 영화가 바로 '무간도'였다.

영화는 삼합회의 신입인 어린 건명과 경찰학교의 생도였던 어린 영인이 서로 뒤 바뀐 곳으로 들어가며 시작된다. 건명은 이제껏 어떤 흔적도 없었기에 가능했고, 영인은 남다른 기질을 보였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영인은 어느새 건명의 조직 보스였던 한침의 중심 부하가 되었고, 건명은 강력반에서도 유능한 경찰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한침의 조직이 태국 마약상과 거래를 하던 중 경찰과 한침의 조직 모두는 서로에게 스파이가 있음을 알아채고 그들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하며, 영인과 건명의 안타까운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90년대 이후 이렇다만 할 홍콩식 느와르 영화가 없었던 상태에서 '무간도'의 성공적인 등장은 한줄기 빛과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관객과 평론의 호평을 받은 데에는 그동안 80년대 이전부터 올드 느와르의 테마였던 '신의(信義)'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화려한 액션보다는 절제되고 세련된 동작들과 고도의 심리전이 첨가되어 인간의 본연을 나타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점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던 씬이 영인과 건명이 어느 빌딩 옥상에서 만난 장면이다. 건명의 선과 악, 영인이 추구하던 평범한 삶의 교차점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올드 느와르의 속이 통쾌할 정도의 액션은 전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씬으로 인해 이 영화가 추구하는 홍콩 느와르의 모던함을 엿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영화의 완벽함을 보고 싶다면 무조건 홍콩 버젼의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중국 개봉버젼은 심의 때문에 결말이 완전 다르므로 밸런스를 모두 깨뜨리게 된다. 

홍콩영화는 무조건 유치할 거라는 편견이 다소 있다. 그도 그럴게 7~80년대의 홍콩 영화는 형제간의 의리,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신념 같은, 이제는 너무 통속적이다 못해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무간도'는 뉴트로한 감성이 있어서 처음 홍콩영화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트렌디한 영화가 될 것 같은데, 이 영화를 통해 편견은 잠시 버리고 홍콩 영화의 매력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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